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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가족의 영웅”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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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29회 작성일 20-05-2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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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가족의 영웅은 TV속에 있었다. 큰아이는 만화물 시리즈에 심취해 있었고 둘째는 "Lion King"을 보고 또 보고 싶어 했다. 아내는 드라마속의 주인공에 매료되어 있었고 나도 스포츠에 열광하고 있었다. 문제는 TV가 한 대 뿐인 것이었다. TV를 놓고 각자의 채널을 맞추기 위해 공방전이 벌어지곤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스포츠의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들은 체도 안했다. 아내에게도 설득 아닌 설득을 했지만 TV를 내 것으로 독차지한 경험은 별로 없다. 그래서 당시에 생각했던 가정의 행복이란 TV앞에 온가족을 스포츠로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거대한 꿈은 세월이 십여년 흘러 지난달에 이루어졌다. WBC 야구경기 덕분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내가 열광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직도 투수와 포수를 혼동하지만 안타도 알고 홈런도 알뿐만 아니라 어느덧 선수의 신상파악까지 나에게 알려주는 스포츠 해설자(?)로 변신해 있었다. 아이들도 언제부터인가 “Korean"이라는 identity가 생겼는지 일본은 이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드디어 온가족이 TV앞에 스포츠로 모이게 되었다. ‘대~한 민국’하며 소리칠 순서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기다려온 십여년이 무너질 만큼 엄청난 변수가 생겼다. 큰아이가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하필이면 일본친구였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집 TV로는 중계방송을 볼 수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생방송을 찾다가 보니 일본방송국을 연결하게 되었고 일본말로 중계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너무나 교양있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마지막 9회말 동점을 만들었을 때는 아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본성을 드러냈다. 연장전에서 일본이 이겼을 때, 아들 친구는 혼잣말로 "Yes!" 하며 조심스럽게 기뻐했다. 우리집은 그날 ‘대~한 민국’이 없이 한일친선단합대회(?)로 끝을 맺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피겨스케이트에 ‘김연아’가 나타나서 한방에 홈런을 터트렸으니 한일전 코드는 시원한 대미를 장식했다. 역시 남자보다 여자인 것 같다.
나는 우리집에서 일어난 한일전의 아이러니를 생각을 해보았다. 다른 곳도 아닌 우리 집이 어떻게 하다가 이런 동상이몽의 현장이 되었을까 의아했다. 고난주간을 맞아서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다보니 고난의 현장에 있었던 성경도 우리에게 동상이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과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마치 개선장군의 입성처럼 묘사를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칼도 빛나는 갑옷도 승리의 월계관과 명마도 없었다. 대신 그저 소수의 무리가 환호하며 종려가지를 꺾어서 흔들었을 뿐이었고, 나귀새끼를 타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입성하셨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눅19장에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호산나”를 외치는 무리들을 책망하라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19:40)고 말씀하셨다.
혹독한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그런 당당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이유는 비록 죽음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의 앞에는 “부활”이라는 진정한 영광의 승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웅의 칭호는 승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의 진정한 영웅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한분이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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